2월 5일, 대전·충남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전충남 통합 특별법'이 마침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공식 회부되며 입법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오는 6월 지방선거 전 통합을 마무리 짓겠다는 이른바 '속도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처리의 시계추가 빨라질수록 현장에서는 "주민의 목소리가 거세된 졸속 통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 "충남이 들러리냐"... 들불처럼 번지는 '소외론'과 '핫바지' 정서
4일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확인된 민심은 차가웠다. 충남 도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통합이 대전 중심의 ‘도시 비대화’로 이어져 충남의 농어촌 지역이 행정적·재정적으로 소외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법안 내용 중 통합특별시의 약칭을 ‘대전특별시’로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충남 지역사회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충남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처사”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며, 자칫 지역 간의 해묵은 감정싸움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편익을 강조하는 '장밋빛 비전'만으로는 수십 년간 쌓아온 지역의 자부심과 정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 '이름'과 '집'을 둘러싼 동상이몽... 명칭과 청사 소재지의 늪
통합의 상징인 '명칭'과 '청사 소재지'는 가장 휘발성 높은 뇌관이다. 현재 여야 특별법안 모두 청사 위치에 대해 확답을 내놓지 못한 채 "통합 지자체의 조례로 정한다"거나 "기존 청사를 병행 사용한다"는 임시방편식 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갈등을 미래로 유예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광주·전남 등 타 지역의 통합 시도가 청사 위치 문제로 좌초됐던 전례를 볼 때, 주청사의 위치를 두고 벌어질 대전과 내포신도시 간의 주도권 다툼은 통합 이후의 행정 마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에 교육계 또한 교육감 선거 방식 변경과 감사권 도입 등에 반발하며 "교육 자치가 행정 효율성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갈등의 전선은 더욱 넓어지는 양상이다.
■ '숙성' 없는 통합은 사상누각... "주민 투표가 정당성 부여의 핵심"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하는 핵심은 '숙의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현재 추진되는 방식이 시·도지사와 정치권의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비판이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은 "주민들은 통합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며, 지방선거 전 통합을 강행하는 '정치 스케줄'에 맞춘 일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전 시민의 절반 이상(50.8%)이 통합에 반대하거나 신중론을 펼치고 있는 지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통과와 별개로, 주민투표나 이에 준하는 대규모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시·도민의 실질적인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결론: '정치적 결합' 넘어 '화학적 융합'으로 가야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속도'가 '방향'을 앞질러서는 곤란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소외된 지역의 상실감을 어루만지는 세밀한 행정 설계와 진정성 있는 소통이다.
2026년 7월, 우리가 맞이할 '대전충남특별시'가 갈등의 결과물이 아닌 축복의 탄생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속도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역민의 마음을 얻는 '숙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