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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숨을 허락하는 관계, 명절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강양자 교육학박사 기자입력 2026. 02. 13. 11:07 · 수정 2026. 02. 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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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명절은 가족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그날은 오히려 숨이 가빠지는 날이기도 하다. 오랜만의 만남은 반갑지만, 묻지 않아도 될 질문과 설명하지 않아도 될 삶의 속도가 그 자리에 스며든다. 명절이 쉼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일정의 분주함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숨을 고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울타리이지만, 때로는 개인의 호흡을 가장 쉽게 놓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뭐 하니”, “앞으로 계획은 있니”라는 말은 관심의 표현처럼 들리지만,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부담의 언어가 된다. 관계가 따뜻하려면 말의 의도보다 그 말이 놓이는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모든 질문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를 움직이려는 대화가 아니라, 잠시 멈추게 하는 여백에서 시작된다. 얼마나 이루었는지를 확인하기보다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헤아리는 시간, 성취를 묻기보다 숨이 고른지를 살피는 태도. 그것이 명절이 지녀야 할 관계의 품격이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선택과 속도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 만남은 회복이 아니라 소진으로 남는다. 명절은 역할을 수행하는 무대가 아니라, 역할을 내려놓아도 괜찮은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호흡으로 돌아온다.

관계의 품격은 거창한 화해나 감동적인 이벤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삶을 재단하지 않고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숨을 재촉하지 않는 관계,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관계는 말없이도 깊은 신뢰를 쌓는다. 그 신뢰 위에서 명절은 부담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 된다.

명절은 어제를 반복하는 날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누구도 숨 가쁘지 않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숨을 허락할 수 있을 때, 명절은 비로소 삶의 온도가 된다.

[필자 소개]
강양자 |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40여 년간 교육·복지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관계의 기술’로서의 나눔과 웰 리빙(Well-living) 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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