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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침묵의 깊이 :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강양자 교육학박사 기자입력 2026. 05. 18. 10:54 · 수정 2026. 05. 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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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말 앞에 선다. 때로는 격려의 말을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끊임없이 지시받고 평가받는 자리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기준 앞에 오래 서 있다 보면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설명할 힘조차 사라진다. 그 순간 사람은 말보다 먼저 숨고 싶어진다. 마치 흰 눈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을 만큼.

우리는 흔히 관계를 말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깊은 순간들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조언이나 정답이 아니라,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일 때가 많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침묵, 다그치지 않는 기다림은 사람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킨다.

교육과 복지의 현장에서 오래 머물며 깨달은 것은, 사람을 가장 위축시키는 힘도 언어이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 또한 언어라는 사실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은 쉽게 기준이 되고 채점이 된다. “왜 그것밖에 못하니”라는 한마디는 존재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주는 태도는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함부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다. 모든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며, 상대가 자기 속도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공간이다. 성숙한 관계는 많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말이 멈춘 자리에서도 편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관계는 깊어진다.

삶에는 설명보다 더 오래 남는 순간들이 있다. 지친 하루 끝에 조용히 건네진 따뜻한 차 한 잔, 아무 질문 없이 곁을 지켜주던 침묵, 끝내 묻지 않아 주었던 배려 같은 것들이다. 사람은 그런 기억 속에서 다시 자신을 회복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변화시키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때로 사람을 가장 크게 살리는 힘은,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 태도일지 모른다.

그날,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고 있었다.

[필자 소개]강양자 |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40여 년간 교육·복지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관계의 기술’로서의 나눔과 웰 리빙(Well-living) 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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