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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관계의 품격, 누군가의 ‘친정’이 된다는 것

강양자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강양자 교육학박사 기자입력 2026. 01. 31. 16:43 · 수정 2026. 01. 3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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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강양자 교육학박사.(사진=대전충남뉴스)

나눔은 흔히 ‘주는 사람’의 이야기로 기록된다. 누가 무엇을 베풀었는지, 그 행위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가 서사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오랜 교육·복지 현장에서 마주한 나눔은 단순한 미담으로 환원되기 어렵다. 나눔은 일방적인 선행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오늘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기술에 가깝다.

나눔이 ‘베풂’의 언어로만 설명될 때 관계는 쉽게 수직 구조에 갇힌다. 돕는 쪽은 주체가 되고, 받는 쪽은 대상이 된다. 선의는 미덕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 도움은 존엄을 회복하는 통로가 아니라 무심코 거리를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현장에서 시혜적 접근을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의 연대는 이러한 구분을 오래 허용하지 않는다. 손을 내미는 순간 온기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돌봄은 오가고, 말은 섞이며, 관계는 다시 짜인다. 타인을 위로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이 된다. 그 안에서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경계는 점차 힘을 잃는다.

최근 필자의 가정에서 진행한 미혼모 가족 대상 ‘1박 2일 홈 커밍데이’는 이러한 전환을 보여준다. 공적인 시설이 아닌 사적인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식사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전문가와 대상자’라는 구분은 자연스럽게 옅어졌다. 그들은 지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온 이웃이었다.

한 어머니는 행사 후 이렇게 전했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대화가 오간 식사가 마치 친정집에 온 것처럼 마음을 놓이게 했다.” 이 말에는 물질적 지원에 대한 감사보다, 존재 자체로 환대받았다는 감각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삶이 한시적으로나마 안전한 곳에 닿을 때, 사람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결국, 나눔은 결핍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기꺼이 ‘친정’이 되어주는 일이다. 성과와 속도가 기준이 된 사회에서 타인을 향한 시간은 비효율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자신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관계는 삶의 안정과 회복을 지탱하는 핵심 조건이다.

우리의 실천이 시혜에 머물지 않고 존엄과 참여로 이어질 때, 그것은 개인의 선행을 넘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미래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선택이다.

이제 나눔은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베푸는 자’의 언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꺼이 ‘친정’이 되어줄 수 있을 때, 연대는 동정을 넘어 삶의 품격을 높이는 사회적 자산이 된다. 고립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미담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다.


[필자 소개]
강양자 |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40여 년간 교육·복지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연구해 왔다. 현재는 나눔을 ‘관계의 기술’로 풀어내며, 웰 리빙(Well-living) 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happy@kslab.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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