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전시회를 찾았다.
도슨트의 깊이 있는 해설을 따라 큐비즘의 탄생과 발전을 살펴보며,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천천히 마주했다.
작품 앞에 서니 익숙했던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하나의 사물을 한쪽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이 한 화면 안에 놓여 있었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옆에서 드러나고, 가까이에서는 놓쳤던 것이 조금 떨어져 바라볼 때 비로소 보였다.
큐비즘 작가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하나의 시선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다시 화면에 구성했다.
그 앞에서 문득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생각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얼마나 쉽게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가.
말 한마디를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한 번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장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말이 적은 사람에게는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무심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남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느린 사람에게는 그만의 속도가 있고,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혼자 감당해온 시간이 있을지 모른다.
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쩌면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면에서보이지 않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가까이에서 놓친 것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것. 한 번의 모습만으로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다.
“왜 저럴까?”라고 판단하기 전에
잠시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
그 작은 멈춤이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을 달라지게 한다.
전시장을 거닐며 나는 그림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함께 돌아보고 있었다.
어쩌면 예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 아닐 것이다.
익숙한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보고,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마음으로 해석한다. 그렇기에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서둘러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 만나는 사람도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 뒤에 아직 만나지 못한 얼굴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이 그 사람 안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보고,
조금 다르게 보고,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을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큐비즘의 화면처럼 우리도 서로를 한 면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한 장면이 아니라 여러 시간이 겹쳐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누군가가 마음에 걸린다면,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자.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다른 얼굴이, 그때 비로소 보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선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부터 바꾼다.
[필자 소개] 강양자 | 교육학박사·사회복지사·KS행복경영연구소장
40여 년간 교육·복지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관계의 기술’로서의 나눔과 웰 리빙(Well-living) 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